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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세운 오랜 기도
  • 작성일 2026-07-01
  • 작성자 국가유산청
  • 조회수 519
하늘에 세운 오랜 기도 솟대 작가 김숙경 마을 어귀에 서 있던 솟대는 하늘을 향해 마음을 올리는 오래된 기도형식이었다. 김숙경 작가는 그 솟대를 작업실과 전시장, 생활공간과 교육 현장으로 불러온다. 그의 손끝에서 솟대는 더는 과거 민간신앙의 흔적에 머물지 않는다. 나무의 결을 따라 깎인 새 한 마리는 오늘의 사람들에게 안녕과 평화, 공동체의 회복을 건넨다. 00.솟대 작가 김숙경 그의 앞에 있는 작품은 〈하나 되는 마음〉 이다

북한산 아래에서 만난 솟대

김숙경 작가의 작업 공간에 들어서면 먼저 나무 냄새가 짙게 다가온다. 받침목과 장대, 그 위에 앉은 크고 작은 새가 공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어떤 것은 간결한 나무조각으로, 어떤 것은 색을 입은 회화적 오브제로, 또 어떤 것은 작은 생활 소품의 형태로 놓여 있다. 마을 밖에 세워졌던 솟대가 어느새 사람 곁으로 들어와 앉은 듯했다.


김 작가의 고향은 북한산 아래다. 어린 시절 집 주변에는 나무가 많았다. 부친은 나무농장을 운영했고, 일가친척 역시 조경수를 다뤘다. 그는 “배워서 익힌 것은 아니지만 나무를 보는 감각이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20여 년 전 우연히 선물 받은 작은 솟대는 그의 마음을 단번에 붙잡았다.


“솟대를 딱 보는 순간 마음을 다 빼앗겼어요. 소박한 나무 기둥 위에 새 한 마리가 올라앉은 형상인데, 그 간결함이 오히려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나무의 본래 결을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하늘을 향한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았죠. 너무나 예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작가가 되려고 솟대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한동안 마음에 드는 솟대를 구입해 개업 선물이나 결혼 선물로 건넸다. 그러며 차츰 솟대의 매력의 빠졌다. 그 솟대를 만들었던 작가가 결국 그의 스승이 됐다. 작품의 간결한 아름다움도 그를 붙잡았지만, 솟대를 대하는 스승의 태도 또한 그를 작업의 길로 이끌었다. 선물하던 물건은 어느새 배움의 대상이 됐고, 배움은 다시 삶의 방향이 됐다. 그렇게 반년간 스승에게 솟대의 기본을 익힌 김 작가는 이후 전국을 다니며 솟대를 보고, 기록하고,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20년 동안 하루도 논 적이 없을 만큼 솟대에 빠져 있었다”라고 말했다.


01.〈서로를 향한 비상〉

새의 시선, 작품의 기운

솟대의 조형은 단순하다. 장대 위에 새가 앉아 있다. 그러나 단순한 형상일수록 작은 차이가 전체의 기운을 바꾼다. 김 작가는 새를 장대 위에 얹을 때 목의 각도, 몸의 방향, 서로 바라보는 시선까지 여러 번 고쳐 본다.


“그냥 툭 올려놓는 것과 새가 무언가 생각하듯 앉아 있는 것은 달라요. 새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서로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상상하면서 몇 번이고 다시 봅니다. 그 작은 차이가 작품 전체의 기운을 바꾸거든요.”


그의 솟대에서 새는 다른 작가의 것보다 조금 크다. 예전에는 새가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과 가족의 대화를 나누는 형상을 즐겨 만들었다. 한 마리는 다른 한 마리를 보고, 또 다른 새는 그 곁을 지키는 식이다. 그러나 최근의 새는 조금 더 먼 곳을 바라본다. 김 작가는 “예전에는 우리 안의 사랑을 생각했다면, 요즘은 더 멀리를 바라보는 느낌으로 변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변화는 솟대가 품은 뜻을 대하는 그의 사유와도 맞닿아 있다. 솟대는 개인의 소망만을 비는 물건이 아니다. 그는 솟대의 본질을 평화와 인간 사랑, 함께 살아가는 마음에서 찾는다. 그래서 작품 속 새는 누군가의 집에 놓인 장식품이면서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다시 잇는 작은 표지처럼 보인다.


02.〈함께 만드는 희망〉 03.〈그리움〉

마을 어귀에서 오늘의 공간으로

전통 솟대는 마을을 지키고 풍요와 안녕을 비는 상징물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사람들은 더는 마을 어귀에 솟대를 세우며 살지 않는다. 김 작가는 이 오래된 상징을 생활공간과 문화공간으로 옮겨 왔다. 차를 마시는 자리에 놓이는 다기 솟대, 결혼식의 병풍과 답례품, 집 안에 둘 수 있는 작은 오브제, 지역축제와 교육 프로그램 속 솟대가 그렇게 탄생했다.


딸의 결혼식에서는 솟대로 병풍을 만들고, 소망을 담은 작은 솟대를 답례품으로 준비했다. 신랑과 신부가 선 자리에도 솟대를 세웠다. 그의 작업에서 솟대는 일생의 중요한 순간을 축하하고 기원하는 물건이 된다. 그는 “솟대는 우리 일상 어느 곳에도 들어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김 작가가 말하는 솟대의 현대화는 겉모양을 세련되게 바꾸는 일에만 그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솟대를 다시 만나는 방식이다. 마을의 공동 기원이 개인의 마음, 가족의 기억, 지역의 정체성, 교육의 경험으로 옮겨오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솟대는 조각이자 설치이고, 생활공예이자 문화콘텐츠가 된다.


04.〈사랑〉 05.〈평화를 향해서〉

연구로 깊게 뻗은 작품의 뿌리

김숙경 작가는 솟대를 깎는 동시에 솟대를 공부해 왔다.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전통 솟대를 문화콘텐츠로 연구했다. 그는 솟대를 공예·교육·생활문화 측면에서 나누어 살피고, 그 안에 깃든 정신을 오늘의 언어로 정리하려 한다.


다만 그의 연구는 작품 바깥에 따로 놓인 이력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의 뿌리를 깊게 하는 토양에 가깝다. 그는 강릉의 진또배기(솟대) 현장을 찾아가고, 지역민이 이어온 솟대 문화를 기록하며, 축제와 세미나, 체험 형식으로 그 가치를 알렸다.


그가 전국의 솟대를 찾아다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솟대는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고, 세워지는 목적에 따라 쓰임도 달라졌다. 강릉에서는 세 마리 새를 올린 솟대를 ‘진또배기’라 부르며 마을 제의와 함께 이어왔고, 나주에는 과거에 급제한 이를 기리며 세운 ‘화주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김 작가에게 이들 이름은 단순한 민속 용어가 아니다. 한 지역이 무엇을 빌었고,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떤 순간을 기념했는지 보여주는 조형의 언어다.


“솟대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체계가 남아야 후속 연구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솟대는 개인의 소망만을 비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평화와 인간 사랑,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06.〈바라기〉

나무 위에 오롯이 남은 희망

연구는 작품의 표정도 바꾸었다. 예전의 솟대가 가까운 사람을 향해 다정하게 기울어 있었다면, 최근의 솟대는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본다. 작가가 말하는 공동체, 평화, 소통의 정신은 새의 시선과 장대의 방향, 작품이 놓이는 공간에 조금씩 스며든다.


교육 현장에서도 같은 고민이 이어진다. 그는 어린이와 시민, 외국인을 만나 솟대를 만들게 하지만, 단순 체험으로 끝나는 것을 경계한다. 나무 위에 소망을 적는 일은 쉽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공동체의 의미와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함께 전할 때 비로소 솟대는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김숙경 작가는 앞으로 솟대 교재를 만들고, 전시와 연구를 이어가고자 한다. 언젠가 솟대박물관을 세우는 것도 그의 꿈이다. 전국 곳곳에 흩어진 솟대의 형태와 기억, 지역의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아 다음 세대가 보고 배울 수 있게 하고 싶어서이다.


그의 작업실에서 본 솟대는 모두 조금씩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새는 서로를 향했고, 어떤 새는 먼 곳을 향했다. 나무의 결을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작가의 손은 그 위에 마음의 방향을 새겨 넣는다. 김숙경 작가가 깎는 것은 결국 새의 모양만이 아니다. 잊힌 기도와 오래된 공동체의 기억,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다시 붙잡아야 할 희망의 방향이다.


[Profile]

김숙경 Kim Sook-Kyung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사)한국솟대문화연구원 초대 대표 역임
(사)대한민국기능전승자협회 솟대 이수자
성신여자대학교 융합산업대학원 출강
대한민국솟대작가협회, (사)아시아민족조형학회, (사)강원민속학회
경기도 고양시 공예산업위원회 위원


2013~ 현재 김숙경 솟대 개인전 5회, 서울시 커뮤니티센터 외 다수 전시
2015 향토미술대전 여성가정복지부장관상 수상
2016 서울시 여성공예소전 서울시장상
2016 목재박람회 산림청장상
2024 목재진흥회 표창





글 윤나래 | 사진 고인순 | 작품이미지 김숙경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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